이 글은
내가 작성한 것이 아님을
미리 밝혀 둔다.
동생이 작성했고
내가 아주 조금 추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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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님, ㅇㅇ님과 아버지에 대한 관계 회복이 ㅇㅇ님과의 관계 회복에 상당한 영향이 있어요. 이번 한 주 기회를 더 줄 테니 아버지에 대한 시간을 가져 보세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라..'
내가 ㅇㅇ학년 때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글쎄..
돌아가시기 전 만 3년 투병 생활 하셨다는 것
그리고 직장을 다니시면 서도 병원을 내 집 드나들 듯 다니셨다는 것
그 사이 사이 내가 기억 해내는 추억은 몇 가지 그저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고
게다가 나는 언니를 유독 예뻐했던 아버지에게 질투 비슷한 감정을 가지고 있어서 나를 향한 아버지의 사랑이 어떠했을지는 쉽게 와 닿지 않았다.
벌써 몇주 째 ㅇㅇ님이 내 주신 숙제를 해내지 못해 마음이 갈수록 무거워지고 있다.
엄마에게 물어 보았다.
'엄마, 나 태어났을 때 아버지가 어땠어? 날 좋아 했어?'
'좋아했지 애들을 워낙 좋아 했잖아 네가 태어나서 얼마 안됐는데 수저에 설탕물을 해서 입속에 넣어주면 그걸 쪽 쪽 빨아먹는 게 신기하다면 한참을 들여다봤어'
'그래?'
아버지는 그랬다. 당신의 부모로부터 가족의 정을 충족히 누려보지 못했기에 우리 삼남매를 낳고 이룬 가정을 무척이나 좋아 하셨던 것 같다.
그래도 뭔가 부족했다.
또 없을까 내가 아버지로부터 사랑 받았다는 증거가?
엄마로부터 나를 육상 선수로 키우라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
내가 공부 보다는 예체능 쪽의 성향이라는 것을 아버지는 진작에
알아보셨나 보다.
제대로 보신 거다. 또 또 뭐가 있을까?
아 그래 있다. 마지막 유언을 남기셨던 날 밤, 내게 했던 말
'에그 ㅇㅇ는 착하기도 하지. 아버지 진통제 사다 주느라 네가 제일 수고 했어
'ㅇㅇ아~ 너 아버지 얼굴 닮았다고 싫어했지 괜찮아 얼굴 닮는 건 괜찮아 그런데 이 몹쓸 병은 닮으면 안되. 그리고 네 엄마, 네가 막내니까 너 좀 시집을 늦게 가거라. 네 엄마가 적적해 하니까 알았지?'
아주 오래 전 그 유언도 다시 떠올려 본다.
하지만 아버지 유언은 그냥 마음만 아프다.
너는 착하다, 엄마를 부탁한다는 말로는 나를 향한 아버지의 사랑을 충분히 느끼기에는 뭔가 부족했다.
의사처럼 능수능란하게 다친 무릎이며 불에 데인 상처를 처치해 주시던 섬세함
길을 건널 때 나를 번쩍 들어 주면 아버지에게 매달리듯 걸어갔던 기억
아파서 생살을 도려내 듯 고통에 겨워 몸부림치시던 임종 직전의 아버지...
쥐어짜듯 기억을 떠올려 보는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은 그저 고통의 긴 터널 같기만 해서 그다지 아버지와의 좋은 기억은 찾기란 쉽지가 않았다.
오빠에게 부탁해서 사진첩을 집으로 가져왔다.
사진들이 낡아빠진 사진첩에 아무렇게나 꽂혀 있었다.
앨범 접착제는 이미 퇴색해서 그을린 갈색의 흔적만 남아 있었다.
오빠는 지난 과거의 아픔만이 고스란히 남은 사진이라 거의 방치 수준으로 가지고만 있었나 보다.
사진 하나가 눈에 들어 왔다. 한참을 들여다 보았다.
어릴 적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가족들이 밥을 먹고 있는 모습의 이 사진은 볼 때 마다 웃음이 난다.
둥그런 양은 상 위에 둘러앉은 엄마, 오빠, 언니, 나
비닐 장판은 얼룩얼룩 물결치고 대충 말아 밀어놓은 이불이며 벽에 걸린 추레한 옷가지들
밥 먹는 모습은 모두 제각각
이 와중에 카메라와 눈을 맞춘 언니는 살짝 놀란 듯 하고
내숭인 나는 옆 모습만을 허락하며 다소곳이 수저를 들고 있다.
사춘기 오빠는 큰 밥그릇에 물을 담아 마시며 절반 이상 얼굴을 가리는 좋은 타이밍을 찾았고
무방비 상태의 엄마는 보기가 민망할 정도의 헝클어진 머리로 밥을 입속으로 떠 넣으시는 순간이 카메라에 잡혀 버렸다.
웃음이 절로 나온다.
나는 이때, 처음으로 이 앵글 너머 아버지를 느꼈다.
예쁠 것 하나 없는 그저 있는 모습 그대로의 당신 가족
당신의 유일한 피붙이를 바라보는 아버지는 아마도 웃고 있지 않았을까?
그것은 설명할 수 없는 뿌듯함, 벅찬 행복감이었을 것이다.
병원을 내 집 드나들 듯 다닌 40 넘은 가장이 느꼈을 죽음과 고통에 대한 두려움,
가족에 대한 애착과 애틋함은 내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나는 이 사진이 아버지의 시선으로 보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는 아버지의 사랑스런 막내딸 이었다.
당신 눈이 감기는 순간까지 놓치고 싶지 않았을 소중한 당신 딸이었다.
일주일 꼬박 사진을 보면서 그림으로도 그려 보았더니 더 진하게 아버지 마음에 몰입이 되었다.
우리 집에는 아버지와 다 같이 찍은 가족사진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 사진을 우리 집의 유일한 가족사진이라고 정했다.
'아버지, 아버지 덕분에 저랑, 엄마, 오빠, 언니 모두 잘 지내고 있어요.
그리고, 아버지가 베풀어주셨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앞으로 더 열심히 살께요.
그러니 각정하지 마시고 편히 쉬고 계세요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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